|
마비痲痺와의 싸움
당협 위원장, 그리고 활동가 동지 여러분.
우리는 오늘 혹한의 추위를 무릅쓰고 여기에 모였습니다. 우리가 이곳으로 기꺼이 달려온 것은, 단지 서로의 체온을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마도 우리 자신 속에 남아 있지를 모를 어떤 희망을 발견하고 싶어서일 것이라 저는 생각합니다.
평당원에서 당 대표 출마를 마음먹은 때로부터 지금 이 시점까지 지난 두 달 동안 저는 우리 당의 당원을 비롯하여 여러 사람들과 만나왔습니다. 사람들은 굳이 절망에 대해 말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힘주어 희망을 말하지도 않았습니다. 저를 괴롭히는 것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애써 환하게 웃는 웃음과 태연한 표정은 실은 무기력과 냉소를 감추려는 안간힘 같은 것이 아니었는지.
‘마비’라는 단어의 사전적 정의는 ‘신경이나 근육이 형태의 변화 없이 기능을 잃어버리는 일’이라 되어 있습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고 쉼 없이 움직이기도 하는데 그 운동이 어떤 변화도, 창조도 이루지 못하거나 의미를 갖지 못하는 것. 그래서 입으로 아무리 희망을 외쳐도 자기위안에 그치고 마는 것. 그래서 총선돌파를 외치고 당의 존립을 자신한다 해도 결국은 실패할 것이라고 자신에게 말하게 되는 것.
우리의 첫 싸움은,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무기력과 냉소, 마비와의 싸움이 될 것이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싸움을 수행하지 않는 한 우리는 끝없이 주위를 되돌아보며 초조함에 시달리게 될 것입니다. 마치 맹수의 눈에 갇힌 왜소한 모습을 보며 온몸이 마비되는 약한 짐승처럼 큰 몸짓으로 움직이는 정치적 이합집산에 눈길을 빼앗기게 됩니다. 그래서 이 시대의 유행어가 된 ‘통합’이 강함의 증거가 아니라 초조함과 약함의 증거라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스스로 일어나 ‘무소의 뿔처럼’ 묵묵히 전진할 자신감과 용기를 지니지 못하게 됩니다.
이제 시작된 겨울과 다음 겨울 사이,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우리는 많은 일들을 만들어내고 해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기적’과도 같은 일들이 필요합니다. 비록 이 기적이라는 말을 ‘은유’로 사용한다 하더라도 우리는 관성적이고 상식적인 시각으로는 보이지 않았던, 예측 가능하지 않은 일들의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어내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것은 ‘비약’을 의미합니다. ‘초월’을 의미합니다.
저는 우리에게 세 가지의 ‘기적’-여기서는 ‘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인식의 전환입니다. 세계적 금융위기 앞에서 진보좌파의 인식이 이 전환기의 성격을 제대로 인식하고 사회적 의제를 제출하는 데 무능함을 노출했다면, 가장 우선적으로 우리는 인식의 전환을 이루어내야 합니다. 둘은, 이 전환기에 맞는 ‘새로운 정당’-그것의 이름이 무엇이든-을 구성해 내야 합니다. 그것은 정치적 세 불리기를 위한 이합집산이 아닌 가치와 정신, 실천이 만나는 연대이며 통합입니다. 셋은, 새로운 정당운동의 시작입니다. 정당의 혁신입니다. 우리의 새로운 정당은 우리가 이루고자 하는 세상을 닮은 당이어야 합니다. ‘죽으면 천국 간다는’-‘집권하면 세상을 바꾸겠다는’- 거짓 종말론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천국을 만들어가는 정당운동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선거 이후’가 아니라 지금부터 계획되고 실천되어야 하는 과제입니다.
‘아직 아님’, ‘아직 실현되지 않음’은 절망과 냉소의 이유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봅시다. ‘무상교육, 무상의료’를 내걸었던 진보가 그것이 다양한 형태로 현실이 되는 것에 자족하며 이 거대한 전환기에 새로운 사회적 의제를 던지지 못하는 것, 저는 이것이 비극의 시작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나는 무엇을 희망해도 좋은가?” 언제부턴가 우리는 칸트가 <순수이성비판>에서 던진 이 물음 앞에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우리는 ‘허락되지 않은 것’, ‘불온한 것’, ‘예측하지 못한 것’을 희망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이 새로운 희망은 우리들이 맺어가는 관계를 변화시킬 것이고, 우리들 개개인의 삶의 방식은 물론 세상을 변화시키는 실천의 방법과 방향을 새롭게 규정할 것입니다.
어떤 전환기인가?―금융자본주의와 석유문명의 전면적 위기의 가시화 ‘위기 이후’를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
1. “제4차대전이 시작되었다.” 이것은 멕시코 사파티스타 해방군 부사령관 마르코스가 10여 년 전에 쓴 글의 제목이다. 전후 냉전(제3차대전)질서의 붕괴 이후 자본주의의 ‘바깥’은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신자유주의의 전면화, 그것이 1980년대 호황 이후 성장이 둔화되어온 한국 경제를 덮친 것은 그 후 10년이 지나지 않은 1997년 IMF 사태였다.
김대중 정권 아래 시작된 자본의 통합·재편과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 나는 그것을 나중 귀국하여 <밥·꽃·양>이라는 다큐멘터리-1998년 정리해고사태에 대한 현대자동차파업사태를 다룬-를 통해 알게 되었다. 당시 노-사-정 위원회의 정부 대표 노무현(당시 국회의원)이 노조 상층부와 타협하여 어떻게 비정규직 우선 정리해고안을 관철시켰는지 보았다. 이것이 ‘포함된 자’와 ‘배제된 자’를 가르는 새로운 자본의 훈육방식이 노골화되기 시작한 시점이다. 어떤 유명한 정치학자가 너무도 쉽게 ‘민주화 이후’라 부르는 이 시기는(그는 얼마 전 민노-국참-통연 3자 통합을 중산층과 노동의 연대 성격을 갖는 ‘바람직한 일’이라 말한 바 있다) 신자유주의가 한국에서 본격화되는 시기였으며, ‘전투적 노동운동’을 표방한 한국의 노동운동이 자본의 공세 앞에서 분열되고 정치적 타협주의로 변모하기 시작한 시기와 일치한다. 이 시기 유행처럼 퍼져나간 이른바 ‘지식기반경제’라는 용어는 단순한 레토릭을 넘어 노동시장의 붕괴를 합리화하는 이데올로기 공세에 다름 아니었다.
2. 위의 ‘제4차대전’이란 말은 최근 미국의 정치평론가이자 나오미 울프가 말한 ‘새로운 전쟁’이란 말과 만난다. 이는 자본과 시민(민중) 사이의 전쟁이다. 미국 금융 중심인 월가 한복판에서 외쳐진 “월가를 점령하라!”는 구호를 비롯하여 유럽의 경제 위기를 계기로 신자유주의는 위기를 중심에서 주변을 공략하는 방식으로 타개하려 할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한미 FTA가 시작된 것이다. FTA는 한국사회의 사회적 공공성의 파괴와 민주주의의 위기, 농업 기반의 철저한 붕괴, ‘노동(고용) 없는 사회’를 전례 없는 속도로 가속화시킬 것이다. 이 과정에서 수출경쟁력이 있는 주력 상품(반도체와 자동차 등)을 가진 대자본과 일부 중소기업은 살아남겠지만 한국 경제는 신자유주의적 재편이 전면화될 것이고 이 과정에서 국가 공기업의 민영화, 초국적 금융자본화를 위한 금산분리정책의 철폐가 집요하게 추구될 것이다. 반면 민중 부문의 삶의 비정규직화를 가져오는 정리해고는 한층 가혹하게 진행될 것이고 빈곤의 심화가 이루어질 것이다.
3. 이러한 한국 사회의 전면적 위기 앞에서 ‘진보의 우경화’는 치명적인 결과-특히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후퇴와 분열, 정치적 교섭주의의 강화-를 낳을 것이다. 이들이 자유주의와의 통합의 명문으로 내건 ‘복지연대’는 과거에 지녔던 급진성이 탈각되고, ‘고용 없는 사회’에 관리사회적 유럽 복지를 선별적으로 시도하는 것으로서 자본주의 극복의 대안은커녕 신자유주의의 보완재 역할을 하면서 권력 쟁투의 공간 안에서 투쟁적 성격을 표방하며 민중의 급진화를 방해하는 반동성을 노출하게 될 것이다. 이미 정리해고반대투쟁을 ‘희망버스’에 하청 주었나, 하는 비판을 받은 바 있는 민노총 상층부는 비정규직 노동자는 물론이고 자본과의 타협을 거부하는 노동운동의 이탈을 막지 못한 채 상층부의 제도정치권에서의 지분 확보에 골몰하는 양상을 보이게 될 것이다. 김진숙 투쟁에 연대하는 진보정치인 두 사람의 돗자리단식투쟁 역시 진보정치의 투쟁성이 아닌 무력함을 노정하는 증거였음은 우리가 주지하고 있는 바 대로이다.
4. 국가 시민사회를 관리하고, 세수 증가에 의존하고 막대한 관리 비용을 낳은 관리형 복지 정책 제시를 넘어선 급진적 복지 의제(‘기본소득제’ 등)가 제기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이제는 금융자본화 원리에 기반을 둔 주주자본주의를 흔들어야 한다. 재벌의 기업소유권이 주식회사의 기본원리에도 위반되는 것임을 폭로할 뿐 아니라, 특히 순환출자구조에 의존하는 삼성 권력의 해체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민영화의 물결에 맞선 ‘금융기관의 공공화’는 물론이고, 기업의 이익이 주주에게로 귀속되는 운영 원리에 문제를 제기하고 기업의 운명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아야 하는 ‘노동자의 경영권’ 쟁취라는 목표로 나아가야 한다. 정리해고와 비정규직화 반대투쟁에 더욱 적극적으로 임해야 하겠지만, ‘노동 없는 사회’를 막는 근본적인 대책은 노동자 경영권의 확립에서 찾을 수 있다는 점에서, 국가권력을 시민의 손으로 뽑는다는 공화국의 원리를 기업에도 적용한다는 의미에서 사회적 합의를 구축할 방안을 동시에 마련해 가야 할 것이다. 이밖에도 주택과 토지의 사적 소유에 대한 대안적 공공정책을 제안해야 한다.
5. 특히 우리는 금융지배체제와 함께 근대자본주의를 지탱해 왔던 또 하나의 축이 탈냉전 이후 본격화된 ‘자원전쟁’을 거치며 그 종국에 이르렀음을, 그리고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핵 개발 중심의 에너지 정책이 파탄에 이르렀음을 직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는 전통적 노동(계급) 사회를 해체하려는 금융자본권력에 대처하지 못한 좌파의 무능과 더불어, 성장주의에 기반을 둔 산업사회론적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한 좌파적 인식의 전면적 쇄신을 요구하는 것이다. 우리는 유럽산 탈노동사회론이 지닌 한계에도 주의를 기울여야겠지만, 임노동 관계에 갇혀 있는 노동의 개념을 확장하고, 비정규화의 대안을 광범한 귀농전략으로 새로운 노-농 연대의 지평을 여는 방향전환도 요청된다 하겠다. 기본소득제와 노동자 경영권을 연결하고, 정리해고 철폐운동과 귀농전략을 연계하는 새로운 전략적 방침이 마련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는 자원과 먹을거리를 확보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21세기 녹색-좌파의 미래전략으로 제기되어야 할 것이다.
낡은 진보와 이별하라―새로운 ‘녹색-좌파’ (연대)정당을 형성하기 위하여
1. 진보신당의 대표단이 새로이 출발하면서 내건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과 진보의 우경화를 극복하려는 진보좌파연석회의는 앞서의 전환기적 인식의 전환에 기초한 것이어야 한다. 과연 이 시대의 진보의 정체성이 어떻게 다시 재구성되어야 하며, 새로이 제기하려는 시대적 과제에 따라 새로운 정당건설과 좌파연대를 확장하고 극대화하는 전략이 세워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본주의를 불편의 상수로 놓고 ‘자유의 점진적 확대’를 꾀해야 한다(유시민)는 자칭 진보적 자유주의자들의 궤변을 우리는 믿지 않으며, 자본독재시대에 자본권력의 해체 없이는 인간의 자유는 결코 보장될 수 없다고 인식하면서 자본주의 극복을 위해 싸우고 노력하는 제 진보좌파 사회단체와 개인이 새로운 진보정당의 기반이 될 것임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이 과정은 지혜와 인내가 요구되는 과정일 것이다. ‘취임의 변’에서, 진보신당은 진보적 가치를 독점할 의사가 없으며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을 위해서라면 대표직도 내려놓을 각오도 되어 있다고 밝혔지만, 진보좌파연석회의에 책임감 있게 열성적으로 참여하면서도 우리는 이미 합의한 대로 우리와 지향을 같이 하는 사회당과의 통합을 미룰 까닭이 없으며, 탈핵의 가치를 걸고 창당을 준비하는 녹색당 창준위와 녹색과 좌파의 연대, 나아가 녹색-좌파 정당을 건설하는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논의에 주저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근대 자본주의를 지탱해 온 두 축인 석유문명과 금융자본 질서가 근원적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생태주의가 사회주의를, 사회주의가 생태주의를 상호 지향할 수밖에 없다면 우리는 이 두 가지 가치의 만남이 한국 사회와 나아가 세계사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 서로 검토해 보기 시작해야 한다고 믿는다. 이 믿음 위에서 이제 막 깊은 대화가 시작되었음을 동지들께 알린다.
한국에서의 진보정당논의는 대기업 노조가 주축이 된 민노총이 상수가 되어 진행되어 온 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었다. 이제 이러한 불균형은 바로잡혀야 하고 진보정당의 위상은 재구축되어야 한다. 이제 우리는 민노총의 그릇된 특정 정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방침을 철회시키거나 이것을 무력화시키려 노력하는 주요 연맹과 현장 노동자들 적극적으로 도울 것이고 이들을 만나기 위한 행보를 본격화할 것이다. 또한 이 배타적 지지방침이 이제는 노동자들의 단결된 힘을 실어 나르는 도구가 아니라 노동자들의 정치적 선택의 자유를 내부로부터 억압하는 기제임을 천명하고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노조 상층 인사들의 제도정치권 진출로 제한하여 여기에 노동조직들을 동원하는 그릇된 정치 행위가 명백한 오류임을 입증해낼 것이다. 진보좌파 정당운동의 기초는 어디까지나 노동자 정치세력화이다. 좌파정당은 이 정치세력화의 올바른 방향을 제시할 의무를 지니며, 새로운 전환기의 과제를 설정하고 이 과제 위에서 노-농-청 연대를 재구축해 가야 할 것이다.
2. 새로운 정당을 건설하는 일은 몇 사람의 선의의 결단으로 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추구하는 가치와 가치가 만나고, 서로 다른 문화와 문화, 관계와 관계가 만나는 일이므로 섬세함과 인내가 요구되는 일이다. 그것은 ‘원샷통합’이라는 언어의 유희 아래 이루어진 상층 권력과 지분 나누기가 아닌 상호존중의 정신으로 우리는 이 일을 조심스럽게, 그러나 결단력 있게 이루어 나갈 것이다. 이제 바야흐로 그 로드맵을 정할 시기가 되었다.
3. 극우와 보수가 결합되어 있는 한나라당과 자유주의 정당인 민주(통합)당, 그리고 자유주의와 타협적 진보, 민족주의 계열이 결합된 통진당의 각축 속에서 자본주의 문명 극복과 자본권력의 해체를 지향하는 새로운 정당이 가야할 길은 험난할 것이다. 우리는 군사적 권위주의 체제와 ‘1987년 체제’의 소산인 대통령 중심제를 정당의 책임정치를 가능하게 하는 내각제로 변화시키는 문제를 이제는 제기할 때가 되었다. 이제 이 문제는 진보진영 내에서 금기시되어 오던 상황을 걷어내고 일시적인 정치적 유불리를 떠나 공론화되어야 할 때가 되었다. 대통령제는 한국에서 의회에서 탄핵하는 것 말고는 특정 정당 간의 권력을 둘러싼 제로섬 게임 이상의 의미를 가지기 힘들며, 이것은 수구세력의 집권을 막아야 한다는 이유로 통합이라는 구호 아래 줄 세우기를 시도하는, 그리하여 민중들의 자유로운 정치적 선택권을 가로막는 비민주성을 지닌다고 생각한다.
이 내각제는 비례대표제 중심으로의 선거법 개정운동과 동시에 제기되고 진행되어야 할 사항이다. 누구든 자기가 선호하는 정당에 투표하고 그 투표율대로 정당이 의석수를 나눌 때 한국에서의 정당정치는 모리배들이 아닌 국민과 민중과 시민의 실질적 대표들이 책임 있는 정당정치를 실현하는 ‘대의제 민주주의’가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다가오는 선거에서 우리는 국가권력 구도와 선거제도의 개혁을 강력히 주장해야 한다.
희망은 우리 스스로의 영토를 넓혀가는 길밖에 없다―새로운 정당운동의 길
보수정당은 말할 것도 없고 진보 정당 역시 참된 의미에서 공동의 철학과 이념에 따라 결속한 공동체가 아니라 몇몇 명망가에게 기대어 존립하는 붕당에 지나지 않는 것은 지나온 과정이 우리에게 일러주는 현실이다. 보수와 자유주의, 진보를 가릴 것 없이 맞이하고 있는 정당정치의 위기는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밑으로부터 대중은 전혀 새로운 정당을 이미 요구하고 있다. 자본주의 극복의 가치 지향인 녹색과 좌파의 광범한 연대의 요구는 이 밑으로부터의 요구에 의해 정당운동이 중앙을 넘어 지역과 일상의 영역으로 확대할 것을 요구받고 있다. 앞서의 새로운 정당의 창당과정 역시 이 정당운동의 새로운 전개와 더불어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부터 정당혁신을 시작하자. 나는 우선적으로 다음의 세 가지 과제를 추진할 것이다.
1. 우선 여의도 의사당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당사의 이전 계획부터 수립하고 총선 이전에도 이것이 시행될 수 있도록 제안할 것이다. 그리고 중앙당과 지역 당협도 풀뿌리 민중들의 자치적 조직-민주의 집 모델-으로 전환하는 일을 제안하고 실천할 것이다.(개인적으로 나는 ‘전태일의 집’이라 부르고 싶다. 그가 보여준 사랑과 헌신의 인간성에 기초한. 이것이 자본이 인간성을 모멸하는 이 시대에 우리의 정신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므로.) 좌파는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세상을 닮은, 그것을 선취해 실현하는 사람들의 이름입니다. 이것부터 시작하자. 이것이 우리 시대의 진정한 진지전이며, 아리프 딜릭이 지역과 풀뿌리 전략에 이름 붙인 ‘릴리펏 전략(막강한 걸리버를 굴복시킨 난장이들-릴리펏 사람들의 이름을 딴)이 될 것이다.
2. 당 활동에서 ‘자기다움’의 기준을 찾고, 사업 작풍(활동방식)과 조직작동방식(당헌·당규)를 혁신할 길을 찾아 이를 시도할 것이다. 우리는 너무 많은 일들 속에 둘러싸여 있다. 하나의 정당이 세상과 만나기 위해 치르는 일상적 일들의 더미 속에서 우리는 우리가 하는 일의 의미와 방향을 오히려 일 속에서 잊어버릴 수 있는 위험이 있는 것이다. 지금 일부러 단어를 찾는 수고를 하지 않았지만, 라틴어의 ‘종결(정지’를 의미하는 단어는 동시에 새로운 시작(전환)의 의미를 같이 갖고 있다. 우리는 어쩌면 새로운 시작을 위한 정지가 필요한 것인지 모른다. 우리들 각자는 우리 자신이 하는 일의 의미를 다시 확인하고 방향을 가다듬을 수 있도록 필요하다면 ‘정지의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중앙당 당직자들부터 순환휴가의 문제도 검토할 것입니다.
3. 당 혁신은 당원 민주주의의 다른 이름이며, 평당원의 지지와 참여를 가능한 일입니다. 당원이 주인이 되는 당 혁신 방안을 당과 당원들 내부로부터 발견하는 과정을 신속히 시행하도록 하겠다는 말씀만 여기서 덧붙입니다. 구체적이고도 현실적인 방안이 마련되는 대로 이를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당 대표로서 당원들과 숨결을 나눌 수 있도록 말과 글과 몸으로 찾아뵐 것을 약속드립니다.
동지 여러분.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일본인들 사이에선 “삶은 기적이다”는 말이 나기도 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당이 위기에 처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이 이렇게 건재할 수 있음을 이미 여러분이 이룬 첫 번째 기적입니다. 이번에 말씀드리는 세 가지 기적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우리는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이 토론의 마당이 당원 전체의 토론의 시작이 될 수 있도록 활동가 동지 여러분의 각별한 노력을 당부 드립니다.
진보신당 대표 홍세화
|